1. 통일신라 발전
1. 신라 중대 왕권과 중앙집권 강화
+무열왕계 왕위세습 (진골출신 왕위세습) +집사부 중시의 강화 (국가 기밀 관장, 왕명출납 업무, 상대등 권학 약화) +6두품 역할 증대 (왕권과 결탁해 상대적으로 지위 향상, 신분적 제약으로 중앙관청의 수상이나 장관직은 진골이 독차지) |
왕권 강화 과정
태종 무열왕 (654-661): 통일전쟁을 수행해 백제 멸망(660)시킴
문무왕 (661-681): 고구려 멸망(668)시킴, 당과 전쟁에서 삼국통일
*신문왕 (681-692)
-귀족세력 숙청: 김흠돌의 난 계기
-개혁정치
+관료전 지급(687), 녹읍 폐지(689) (귀족 약화+ 왕권강화)
+중앙정치기구 정비:집사부 등 14부 관청 설치
+지방행정조직 정비: 전국 9주로 나눔, 5 소경(북원경, 중원경, 서원경, 남원경, 금관경)
+군사조직 정비: 중앙군-9 서당, 지방 군-10정 정비,
+국학 설치(682): 유교정치 이념 수용
+만파식적 설화: 전제왕권 강화, 왕실 번영, 평화 상징
+달구벌 천도 시도: 국왕권 강화 위해 시도 => 실패
식읍: 공을 세우는 특수한 경우에 받는 것 사람을 대상으로 조세와 물품을 수취할 수 있는 권리 녹읍: 녹봉대신 일정한 토지에 대한 수조권 행사, 노동력을 징발 권리 주거민의 역역까지 징발, 일정한 지역민에 대한 총체적 지배 관료전: 신문왕 때 문무 관리에게 지급한 토지, 현직관료의 관직을 기준으로 차등 현직에서 물러나면 국가로 다시 환수 원칙 |
성덕왕 (702-737): 정전 지급(722)
- 왕권 동요: 경덕왕 때 녹읍 부활
2. 신라하대 국가 통제력 약화
1. 호족 등장
2. 왕위 쟁탈전 시작
-무열 왕계 약화
-혜공왕 피살: 96 각간이 서로 싸워 정치적 혼란(대공의 난(768)) => 왕권 약화
혜공왕에 반대 (김지정의 난(780)) => 혜공왕 반군에 피살
-상대등 김양상이 선덕왕에 즉위: 무열 왕계 진골에 의한 왕위세습 끝
-왕위 쟁탈전: 귀족들의 치열한 왕위 쟁탈전 시작
* 신라 하대 대표적인 3난 1. 현덕왕- 김헌창의 난(822): 무열왕계vs내물왕계 대립 =>실패 2. 현덕왕- 김범문의 난(825): 김헌창의 아들 김범문이 산적 수신과 연합해 반란 =>실패 3. 문성왕- 장보고의 난(846): 문성왕이 장보고의 딸을 차비로 들이려다 진골귀족 반대로 혼인성사 실패로 반기 장보고의 부하 염장을 자객으로 보내 처단 |
3. 상대등 세력 강화: 화백 회의 다시 강화(귀족 연합), 집사부 시중 권력 약화
3. 사회 모순
1. 국가 재정 약화: 녹읍이 부활(경덕왕), 사원의 면세전 확대, => 국가 토지 지배력 매우 약화
2. 농민 몰락
-자연재해+왕실 귀족의 사치로 국가 재정 파탄
-농민 수탈 강화
-녹읍이 부활하면서 귀족의 농민 지배력 강화 => 자영농 몰락 => 노비나 초적이 됨
-농민반란: 원종과 애노의 난(889), 적고적 봉기(896) => 전국적 민란 확대
4. 호족세력 등장
+ 지방에서 군사력+경제력 갖춘 반정부 세력 성장
+스스로 '성주' 혹은 '장군'이라 지칭, 그 지역의 행정권과 군사권 징세권을 행사
+대농장을 통한 경제적 지배권 장악
1. 선종의 수용: 선종을 수용해 교종을 중심으로 한 중앙귀족 권위에 도전, 지방민+하층민 통합하고자 함
2. 풍수지리설 수용: 지방 중심의 국토 재편성 주장 (=> 중앙정부 권위 통제+약화 & 지방 호족 등장의 근거)
3. 6두품 개혁 시도 : 과거제 실시+유교 정치 이념 수용 주장 (최치원의 시무 10조) => 반 신라 세력 성장