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개혁 시도>
1. 충렬왕(1274-1298, 1298-1308)
-원의 제국 대장 공주와 혼인 후 호복+변발로 입국
-몽골의 계속된 일본 원정 추진 => 인적, 물적 자원 수탈 심화
-'동녕부'폐지 => 서경유수관 설치(1290), '탐라총관부'폐지=> 제주 '목사' 파견
-관제 격하(1275): 2성 6부=> 첨의부, 중추원=> 밀직사, 어사대 => 감찰원으로 관제 격하
-성균관 설치, 경사 교수 도감 설치(교육 담당)
-충선왕과 대립: 음주가무에 빠져 대립 => 원나라 '무종' 즉위 후 충선왕의 원나라 위치 승격
=> 충렬왕의 총신 '왕소유' 일당 모두 처형 => 이후 모든 실권은 세자에게 뺏겨 사망 => 다시 충선왕이 왕위
2. 충선왕(1298, 1308-1313)
-왕권 강화시도: 정방 폐지, 충렬왕 때 설치된 문한서를 사림원으로 개칭하고 과거 출신자들 등용해 왕명 출납 업무 담당
-권문세족 견제: 신진관료 중심으로 권문세족의 대농장 토지제도 등 모순 시정 목적으로 개혁 추진
-심양왕 즉위: 충선왕의 조비 무고 사건으로 퇴위당해 원나라 압송 후 '회령왕'과 친밀
=> '회령왕'이 훗날 '무종'으로 즉위하며 충선왕은 심양왕에 봉해짐 => 충렬왕과 왕위 계승 다툼은 충선왕 승리로 종식
-복위 교서 반포: 인재 등용, 왕실 근친혼 금지, 권세가 횡포 엄단 등 혁신정치 천명
-소금 전매제(각염법) 시행: '의염창' 설치해 한 해 포 4만 필에 준하는 국가 수입 유지 => 재정확보
+원의 간섭을 인정한 상태에서 개혁 =>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강화하는데만 목적으로 한계
3. 충숙왕(1313-1330, 1332-1339)
-찰리변위도감 설치(1318): 정치, 경제, 사회 등 전 분야 폐단 개혁 위한 교서 발표, '제폐사목소' 설치
=> 제폐사목소를 '찰리변위도감'으로 변경 => 권문세족 반팔로 도감이 혁파되면서 실패
-정방 설치 => 스스로 인사권 장악, 찰리변위도감 재설치
=> 원의 요총으로 충숙왕 입조, 입성 책동으로 정치적 혼란
-개혁 과정 중 자신의 측근 세력의 비리나 불법은 예외로 허용
=> 내부적 분열로 정치적 파행
-충혜왕에게 왕건 양위 => 충혜왕 2년 만에 물러남 => 충숙왕 재복위 8년 후 사망 => 충혜왕 재복위
4. 충혜왕(1330-1332, 1339-1344)
-편민조례추변도감 설치: 왕권 강화 목적+재정 확보 목적 => 민생안정
=> 기황후 계 권문세족 '기철'의 반발로 개혁 실패
-원 압송되어 유배 중 사망
5. 충목왕(1344-1348)
-폐정개혁 추진: 고리대 규제, 응방 등 백성 수탈 기구 혁파, 권문세족의 불법적 토지를 원주인에게 돌려줌, 노비해방
=> 민생안정
-정방 혁파 => 반개혁 세력의 방해로 다시 설치
-신진 사류(권재, 김영돈 등) '정치도감'설치 => 토지 겸병, 노비, 피역 등 모순 해결 => 기황후 일족 등의 반발로 실패
6. 충정왕 (볼 게 없음)
7. 공민왕(1351-1374)
1. 반원 자주 정책: 친원파 세력 숙청, 이문소 폐지, 격하된 관제 2성 6부 체제로 복구, 몽골풍 폐지
2. 영토 확장: '쌍성총관부'+철령 이북 땅을 무력으로 수복, '요양' 점령
3. 친명 정책: 원의 연호 대신 '명'의 연호 사용
4. 왕권 강화
-정방 폐지
-흥왕사의 변 진압(1362)-이를 계기로 반원 개혁 정치 본격화
-전민변정도감 설치(1366): 국가 재정 확보+민생 안정, 섭정대사로 승려 '신돈' 등용
5. 성균관 정비: 유학 교육 강화, 신진 사대부들 대거 등용
6. 자제위 설치: 왕권 강화+신변 호위 위한 인재 양성
=> 신흥 무인 세력으로 '이성계'가 성장, 자제위에 고위 관직자의 자제 선발
=>자제위 사이에 풍기 분란 발생 => '최만생', '홍륜'이 공민왕 제거
<개혁 정치 실패>
-대외적으로 원의 세력 + 대내적으로 권문세족과 대립 => 두 적을 동시에 상대 어려움
-친원파 완전 제거의 어려움
-원의 간섭 극심
-권문세족의 반발로 개혁 추진하던 '신돈' 제거, 공민왕까지 암살
=> 권문세족의 정치권력 독점, 대농장 확대로 국가 기강 문란, 백성들의 삶 피폐
<홍건적과 왜구 침입>
1. 홍건적 침입
-원의 쇠퇴로 홍건적이 원의 추격에 쫓겨 고려에 침입 => 개경 함락
-제1차 침입(1359): '모거경' 등 4만 군이 침입 => '이승경', '이방실' 등 격퇴
-제2차 침입(1361): '사유' 등 10만 군 개경 함락 -> '정세운', '안우', '이방실' 등 격퇴
2. 왜구 침략
-일본의 '무로마치 막부'가 성립
-남조와 북조가 대립하면서 지방 통제력 약화된 상태에서 왜구의 침략
-조운선의 약탈 빈번
-무력 토벌 전개: 왜구 침입 격퇴, 사회 안정 => '최영', '이성계' 등 신흥 무인 세력 성장
<몽골의 침입과 저항> 1. 귀주성 전투(1231) 2. 강화도 천도, 처인부곡 전투(1232) 3. 충주성 전투(1253) 4. 충주다인철소 전투(1254) 4. 무오정변(1258) 5. 쌍썽총관부 설치(1259-1356) 6. 고려태자의 몽골입조(1260) 7. 개경환도(1270) 8. 삼별초 항쟁(1270-1273) 9. 동녕부 설치(1270-1290) 10. 탐라총관부 설치(1273-1301) |
<고려의 왜구 격퇴> 최영- 홍산 대첩(부여) 1376년 최무선-진포해전(금강) 1380년 이성계-황산대첩(남원) 1380년 정지-관음포 대첩(남해) 1383년 박위-쓰시마 섬 정벌 1389년 |